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론조 모닝 (문단 편집) === 마이애미 시절 part 3 === [[파일:external/miamiheatchampionshipteam.weebly.com/8799593_orig.jpg|width=300]] 마이애미에서는 모닝의 전성기 시절 라이벌 격이었던 [[샤킬 오닐]]이 팀의 주축이었다. 그러나 모닝은 전성기 때의 다혈질적인 모습보다는 팀의 분위기를 잡는 역할과 수비형 백업 [[센터(농구)|센터]][* 시즌 중반에 모닝의 히트 합류가 확정되자 많은 팬들은 1992년 드래프트 1순위-2순위의 막강한 트윈타워를 기대했으나, 모닝과 오닐이 함께 뛸 때는 심히 좋지 않은 효율을 보였다. 이론적으로 보면 키가 센터치고 작지만 기동력이 뛰어나고 점프슛이 뛰어난 모닝이 [[파워 포워드]]로 뛰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문제는 모닝이 커리어 내내 센터로만 뛰어왔다는 것과 샤킬 오닐은 느린 발과 아예 없는 중거리 슛으로 인해 센터 외 포지션 소화가 아예 불가능한 선수였다는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오닐에게 파워 포워드를 시키지 않는다는 게 당연하니 넘어가고, 모닝의 경우 커리어 초반의 래리 존슨이나 중후반의 PJ 브라운, 브라이언 그랜트 등은 모두 중거리 슛이 가능하고 행동반경이 비교적 넓은 순수 포워드였다(센터겸비가 아니란 말) 이러니 모닝은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순수센터에 가깝게 자리를 잡았다. 실제로 바스켓볼 레퍼런스(http://www.basketball-reference.com/players/m/mournal01.html)의 play-by-play 항목을 보면 모닝이 파워 포워드로 가장 많이 뛴 시즌은 뉴저지 시절인 04, 05시즌으로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위력이 약했던 때였다. 센터 둘이 뛸 때는 둘 다 골밑에만 있으면 상상 이상으로 공수가 뻑뻑해지기 때문에 한 사람이 [[파워 포워드]] 역할을 맡아줘야 하는데, 두 선수 모두 이런 역할을 할 수 없었으니 문제였다. 이 때문에 두 선수는 같이 뛸 때가 거의 없었다.]로서의 모습을 보이면서 2005-06 시즌엔 히트의 첫 우승을 이끄는 데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블록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였는데, 경기당 20분만 뛰고도 평균 2.7블록을 기록했다. 48분 환산 기준으로는 경기당 무려 6.4블록에 해당하는 엄청난 수치다. 다음 시즌인 2006-07 시즌은 오닐의 결장이 잦아지며 상당한 경기를 주전 센터로 뛰었고, 경기당 20.3분을 뛰며 평균 2.3블록이라는 여전히 어마어마한 블록으로 인사이드를 지켰다. 자신의 15번째 시즌인 2007-08시즌에도 변함없이 활약하던 와중, 12월 19일 애틀랜타 호크스 전에서 무릎 슬개건이 파열되는 중상으로 결국 시즌을 조기에 마무리하게 된다. 본인도 자신의 경력이 이렇게 끝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기 때문에[* 참고로 찰스 바클리의 경우 1999-00시즌을 치르던 중 무릎 인대 파열이라는 중상을 당해 어이없이 은퇴할 위기에 놓였지만, 이렇게 경력을 끝낼 순 없다며 초인적인 노력으로 재활끝에 시즌 막판 기어이 복귀하여 은퇴 경기를 치른 사례가 있었다.] 2008-09시즌에 돌아온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결국 [[2009년]] [[1월 22일]] 은퇴를 선언했다. 다음달인 [[2월 28일]] 모닝의 33번이 영구결번 되었고, 2014년에는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